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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찬찬히 읽기 1

rewriter751 2016. 2. 18. 11:32

기사, 찬찬히 읽기

애플, 테러범 아이폰 잠금해제 거부…”고객보안이 최우선”

한미희 - 연합뉴스 - 2016년 2월 17일 수요일

제목은 기자가 뽑았을까 데스크가 했을까? 놀랍다. 당신이 누구든지 간에 당신은 분명 독자의 이목을 훅 끌어당길 수 있는 훅(hook)한 감각의 소유자임에 분명하다. 애플, 아이폰, 테러범, 잠금해체 거부, 고객보안 제목에 등장하는 명사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뷰를 보장할 만한 키워드들의 나열이면서도 기사 내용의 암시와 왜곡이 적당히(?) 이루어진 제목이기 때문이다. 이만한 키워드들을 적절하기 추출해 배열해 내는 그 감각이 탐난다. 빈정대는 거 아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이다.

기사 제목과 초반 기사 내용을 통해 내 머릿속에 재구되면서 연상되는 사건 개요는 이렇다.

사건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12월,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 주에서 무슬림 부부의 총기 난사(테러) 사건이 있었다. 발달 장애인 복지·재활 센터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14명이 총기에 사망하였으며 추가로 총기 및 탄약이 발견되어 세간을 경악게 했다. 이 사건을 조사 중인 FBI는 이 부부의 여죄 및 공범자 등을 조사하기 위해 그들의 ‘아이폰’을 조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폰의 잠금장치를 해제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답게 ‘이거 짜증나는데 애플 시켜. 지들이 만들었으니 간단히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애플에 잠금해제를 요청했다. 그런데 애플 이놈들이 감히 “나 못해.”라고 나왔다. “테러 용의자, 걔들 개인정보도 못 주겠다는 거야?” “야, 나 공권력이라고. 게다가 이거 테러야, 테러. 너 잊었어, 9.11? 이놈들 무슬림이라고. 우리의 공공의 적! 이건 남한에서는 감히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야. 너 카카오 짝 나고 싶어? 너 종북 좌빨이지?”

이런 망상에 이성이 훅 가버린 것이 아니라면 기사를 꼼꼼히 읽고 감각을 사로잡는 唐衣를 살짝 벗겨 건조한 사실과 마주해 보자. 이 기사의 본질은 외신의 기사를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 다루는 사실은 기사 말미에 등장한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FBI는 샌버너디노 테러의 용의자인 파룩의 아이폰 비밀번호를 확인하려고 가능한 모든 값을 넣는 ‘무차별 대입 공격’(brute force attack)을 쓸 예정이다. 이를 위해 FBI는 무제한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해도 자료가 삭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애플에 요청했다. 또 1만 개에 이르는 번호 조합을 일일이 손으로 입력하는 대신 빨리 처리하는 방법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팀 쿡 애플 CEO는 17일(현지시간) ‘고객에게 드리는 메시지’를 통해 “미국 정부는 애플이 우리 고객의 보안을 위협하는 전에 없는 조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해 왔다”며 “우리는 이 명령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FBI의 요청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폰의 보안 방식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아이폰의 잠금은 이전에는 4자리, 지금은 6자리 숫자 비밀번호를 넣어야 해제할 수 있다. 기기에 따라서는 저장된 생체 정보(지문)로 잠금을 해제할 수 있지만 기기를 재부팅한 상태에서는 숫자 비밀번호를 넣어야만 잠금을 해제할 수 있다. 게다가 비밀번호를 반복해서 틀릴 경우 기기의 활성화가 지연되며 최악의 경우, 즉 비밀번호를 10번 틀린 경우에는 기기를 모든 정보를 삭제하고 기기를 초기화하는 옵션이 설정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FBI는 단순 무식한 방법인 ‘무차별 대입 공격’을 시도해 보고 싶은데 앞서 언급한 최악의 옵션이 설정되어 있을까 걱정이 드는 것이다. 신이 도와 10번 이내에 비밀번호를 맞추면 다행이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다. 6의 10개의 조합에서 정확하게 비밀번호를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래도 로또를 맞추는 사람도 있잖아. 로또는 6의 45승이라고. 이거에 비하면야 껌이지.

그러니 최악의 옵션이 걸려 있는 경우 이를 해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고 또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입력하자니 귀찮고 실수할 수도 있잖아 하는 김에 무작위 대입용 손가락이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는 앞서의 망상과 미묘하지만 크게 다른 이야기다. 법원이 공리를 위한 범죄 수사를 위해 해당 기업 등에 법률이 정한 절차와 범위 내에서 대상의 개인정보 요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FBI의 두 가지 요구 사항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는 분명히 OS 보안 차원에서 기본 틀을 깨는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내 미천한 IT 상식으로는 iOS에 백도어(back door)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구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내 이런 이해는 최소한 팀 쿡의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는 FBI의 요구를 특정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고객의 보안을 위협하는 전에 없는 조처”라고 받아들였으며 이를 분명하게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번 팀 쿡의 발언과 그 함의를 무조건 믿는 것은 아니다. 그의 거부 발언은 지금까지 애플은 사적인 이익 또는 공공(정부 등)의 요청에 의해 함부로 내어준 적이 없다를 함의한다고 보지 않으며 그래 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갈수록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그 세계의 프레임 안에 ‘빅 브라더’를 공식적으로는 키우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는 꽤 그럴싸하게 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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